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햄릿, AI, 그리고 익숙한 질문 “죽느냐, 사느냐” 기계 학습 관련 뉴스를 읽다가 셰익스피어가 떠오를 줄은 몰랐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자율 AI 시스템에 관한 기사를 보며 화면을 뚫어져라 쳐다보다가, 문득 햄릿이 머리를 스쳤죠.“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이 말이 요즘엔 좀 다르게 들립니다. 단지 인간의 존재를 고민하는 게 아니라, 마치 우리가 만들어내고 있는 '생각하는 기계'에 던지는 질문 같기도 하니까요. 햄릿이라면 알고리즘을 어떻게 다뤘을까?햄릿은 멈춰 있습니다. 그는 슬프고, 화가 나 있고, 행동한다고 해서 상황이 나아질지, 오히려 망칠지 몰라 고민하죠. 그 머뭇거림, 요즘 우리가 AI를 대하는 태도와 꽤 닮았습니다.우리는 계속 고민합니다. 기계가 더 많은 결정을 내리게 해도 괜찮을까? 아니면 잠시 멈추고, 도덕과 책임 같은 복잡한 .. 2025. 6. 8.
디지털 시대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가끔 제 휴대폰 화면 시간 리포트를 보면 속이 살짝 울렁거립니다. 몇 시간을 쓸어 넘기고, 스크롤하고, 클릭했는데도 정작 뭘 봤는지 기억나지 않을 때가 많죠. 단순한 피로감이 아니라, 정서적인 탈진에 가깝습니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읽으면서 그런 기분에 이름을 붙일 수 있었습니다. 가벼움이 무게처럼 느껴질 때쿤데라는 ‘가벼움’과 ‘무거움’ 사이의 긴장을 이야기합니다. 그의 세계에서 가벼움은 자유를 의미합니다. 의무나 지속성, 중력으로부터의 자유. 처음엔 아름답게 들립니다. 그런데 그 자유가 지나치면, 모든 게 하찮아 보이기 시작합니다.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게 되죠.디지털 삶이 꼭 그렇습니다. 빠르게 오가는 메시지, 짧은 정보들, 연결된 듯한 느낌. 그런데도.. 2025. 6. 8.
퇴근길에 토마스 모어의 『유토피아』를 떠올리며 조금은 의아하게 들리실 수도 있겠습니다만, 어느 날 스마트시티 한복판을 걷던 중 문득 토마스 모어의 『유토피아』가 떠올랐습니다. 최신식 가로등, 공공 와이파이, 앱 기반의 도시 운영 시스템까지. 문서로만 보면 매우 인상적인 공간이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왠지 모를 공허함이 느껴졌습니다.벤치는 마련되어 있었으나 앉은 사람은 없고, 디지털 안내판은 많았지만 이를 유심히 보는 이도 없었습니다. 도시는 깨끗하고 효율적이었으나, 그 안에 ‘머문다’는 느낌보다는 ‘지나간다’는 인상이 강했습니다.그 순간 『유토피아』가 다시 떠올랐습니다. 현실성보다, 본질적인 질문을 던지기에토마스 모어가 『유토피아』를 실제 가능한 도시 설계로 제시한 것은 아니었다고 생각합니다. 일부는 지나치게 이상적이며, 어떤 부분은 풍자에 가깝.. 2025. 6. 7.
비트겐슈타인의 언어 게임, 프로그래밍 언어 이해에 적용 프로그래밍을 철학이 바꿔줄 거라고는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코딩이란 건 늘 기술적인 영역이라고 생각했죠. 문법 배우고, 논리 따라가고, 오류 없이 돌아가게 만드는 일. 그런데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의 글을 읽고 나서, 코드가 전혀 다른 의미로 다가오기 시작했습니다.비트겐슈타인은 ‘언어 게임’이라는 개념을 소개했어요. 처음엔 좀 추상적으로 들릴 수 있지만, 저에게는 무척 강렬한 통찰이었습니다. 그는 언어가 고정된 의미를 갖는 게 아니라, 상황 안에서 어떻게 쓰이느냐에 따라 의미를 갖는다고 말했죠. 같은 단어라도 맥락이 다르면 전혀 다른 의미가 될 수 있다는 겁니다. 그리고 저는 문득 깨달았어요. "이거, 프로그래밍이랑 똑같잖아?" 코드를 단순한 명령 그 이상으로 바라보다생각해보세요. if (x .. 2025. 6. 7.
소셜봇 시대, 레비나스의 타자 윤리를 다시 생각하다. 인공지능이 일상에 깊이 들어오면서, 특히 우리가 온라인에서 소통하는 방식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지금, 이런 질문을 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디지털 시대에 인간의 책임은 어디에서 시작되는가?” 윤리 철학자 에마뉘엘 레비나스는 여기에 의미 있는 통찰을 줄 수 있습니다. 그는 ‘얼굴과의 대면’을 통해 타자의 존재가 우리에게 윤리적 응답을 요구한다고 봤습니다. 그런데 이런 사상이 인간처럼 말하고 반응하는 소셜봇과도 연결될 수 있을까요? 윤리는 만남에서 시작된다레비나스에게 윤리는 규칙이나 논리가 아니라, 어떤 존재와의 만남에서 시작됩니다. 타자의 ‘얼굴’은 아무 말 없이 우리에게 책임을 요구하는 존재입니다. 이 관계는 교환이나 평등의 문제를 넘어서, 무한한 책임의 관계입니다. 그렇다면 진짜 의식도 없고, 고통도 .. 2025. 6. 7.
하이데거 '존재와 시간', 스마트워치를 통한 통찰 하이데거의 철학을 다시 떠올리게 된 건, 조용한 서재도 아니었고 철학 강의실도 아니었습니다. 다름 아닌 제 손목에 찬 스마트워치를 확인하던 순간이었습니다. 오늘 얼마나 걸었는지, 몇 시간 잠을 잤는지, 심박수는 어떤지 그 작은 화면은 숫자로 저의 ‘오늘’을 요약해주고 있었습니다. 그 순간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이데거가 말한 ‘시간 속의 존재’란 이런 것이었을까?” 시간 속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으로 ‘살아가는’ 존재하이데거는 단순히 인간이 시간 속에 존재한다고 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시간 자체가 인간의 존재를 구성한다고 보았습니다. 과거의 기억, 미래에 대한 불안, 그리고 죽음을 자각하는 능력까지 모두 시간과 밀접하게 얽혀 있습니다. 우리는 그 시간의 흐름 안에서 스스로를 이해하.. 2025. 6.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