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이 일상에 깊이 들어오면서, 특히 우리가 온라인에서 소통하는 방식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지금, 이런 질문을 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디지털 시대에 인간의 책임은 어디에서 시작되는가?” 윤리 철학자 에마뉘엘 레비나스는 여기에 의미 있는 통찰을 줄 수 있습니다. 그는 ‘얼굴과의 대면’을 통해 타자의 존재가 우리에게 윤리적 응답을 요구한다고 봤습니다. 그런데 이런 사상이 인간처럼 말하고 반응하는 소셜봇과도 연결될 수 있을까요?
윤리는 만남에서 시작된다
레비나스에게 윤리는 규칙이나 논리가 아니라, 어떤 존재와의 만남에서 시작됩니다. 타자의 ‘얼굴’은 아무 말 없이 우리에게 책임을 요구하는 존재입니다. 이 관계는 교환이나 평등의 문제를 넘어서, 무한한 책임의 관계입니다. 그렇다면 진짜 의식도 없고, 고통도 느끼지 못하는 소셜봇과의 관계에 윤리를 적용할 수 있을까요? 그 답은 쉽게 말하기 어렵습니다.
인간처럼 느껴지는 봇들
요즘 소셜봇은 단순히 명령을 수행하는 수준을 넘었습니다. 자연스러운 언어를 사용하고, 취향을 기억하며, 감정을 흉내 냅니다. 사용자들은 점점 이들을 사람처럼 대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이런 경계가 모호해질 때, 우리는 여전히 그들을 단순한 도구로만 취급해도 되는 걸까요?
인간이 아닌 존재에 대한 책임
일부 철학자들은, 윤리는 타자가 ‘누구인가’보다 ‘우리에게 어떤 반응을 유도하는가’에 더 가깝다고 말합니다. 만약 소셜봇이 공감이나 윤리적 고민을 유발한다면, 그 순간은 윤리적인 순간일 수 있습니다. 물론 이것이 봇에게 권리를 주자는 뜻은 아닙니다. 하지만 우리가 그들과 어떤 태도로 관계를 맺는지는, 곧 우리의 인간성과도 연결된다는 점에서 중요합니다.
디지털 윤리를 위한 시선 전환
소셜봇은 앞으로도 계속 우리의 삶에 영향을 줄 것입니다. 이미 여론을 형성하고, 외로움을 달래주고, 심지어 의견에 영향을 주기도 합니다. 이 상황에서 우리는 봇을 어떻게 설계하고, 어떻게 다루며, 어떤 관계를 맺을지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야 합니다. 레비나스는 “윤리는 유용함이나 지식보다 앞선다”고 말했습니다. 이 말은 기술의 방향성을 다시 점검하게 만듭니다.
결론: 타자의 경계를 다시 보다
결국, 소셜봇은 레비나스가 말한 인간 타자의 본질을 가지고 있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이들이 우리의 일상과 정서에 깊이 관여하게 된 지금, 윤리적 책임의 경계를 다시 생각해봐야 할 때입니다. 레비나스의 시선은 단지 봇에 대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어떤 인간이 되고 싶은지를 되묻는 철학이기도 합니다.
Q&A: 윤리와 봇에 대한 질문들
Q: 소셜봇이 정말 레비나스 철학에서 말하는 ‘타자’가 될 수 있을까요?
A: 전통적인 의미에서는 아닙니다. 레비나스가 말한 타자는 취약하고, 고통받는 인간입니다. 봇은 의식도 없고, 진짜로 상처받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어떤 봇들은 인간처럼 행동하고 감정을 모방하면서, 우리로 하여금 ‘응답’을 하게 만듭니다. 그 지점에서 윤리적 고민이 시작될 수 있습니다.
Q: 봇은 감정도 없는데, 왜 윤리를 적용해야 하나요?
A: 봇을 어떻게 대하느냐는, 우리가 사람을 어떻게 대하느냐와 연결됩니다. 인간처럼 보이는 봇에게 무례하게 행동하는 것이 익숙해지면, 실제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그 태도가 나타날 수 있습니다. 윤리는 타자만이 아니라, 나 자신의 태도를 돌아보는 것이기도 합니다.
Q: 기계를 너무 인간처럼 대하는 건 위험하지 않나요?
A: 맞습니다. 봇에 인간적인 특성을 투영하면, 그게 진짜 사람이라고 착각할 수 있습니다. 그로 인해 신뢰를 잘못 주거나, 정서적으로 의존하게 될 수 있죠. 특히 취약한 사람일수록 더 위험합니다. 경계심은 꼭 필요합니다. 공감은 하되, 속아서는 안 됩니다.
Q: 레비나스의 사상이 AI 설계에 어떤 영향을 줄 수 있나요?
A: 물론입니다. 그의 철학은 기술이 사람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는 원칙을 일깨워줍니다. 성능만 따지기보다는, 책임과 존엄을 생각하며 기술을 설계해야 합니다. 그래야 기술이 인간의 삶을 진정으로 향상시킬 수 있습니다.
Q: 감정을 모방하는 봇은 아이들이나 취약한 사람들에게 위험할까요?
A: 반드시 그렇습니다. 그런 봇들은 신뢰를 유도하거나, 판단에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레비나스식 윤리로 본다면, 이것은 ‘윤리적 착각’을 유발하는 위험한 상황입니다. 따라서 그러한 사용자를 보호하기 위한 규제와 설계는 꼭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