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데거의 철학을 다시 떠올리게 된 건, 조용한 서재도 아니었고 철학 강의실도 아니었습니다. 다름 아닌 제 손목에 찬 스마트워치를 확인하던 순간이었습니다. 오늘 얼마나 걸었는지, 몇 시간 잠을 잤는지, 심박수는 어떤지 그 작은 화면은 숫자로 저의 ‘오늘’을 요약해주고 있었습니다. 그 순간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이데거가 말한 ‘시간 속의 존재’란 이런 것이었을까?”
시간 속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으로 ‘살아가는’ 존재
하이데거는 단순히 인간이 시간 속에 존재한다고 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시간 자체가 인간의 존재를 구성한다고 보았습니다. 과거의 기억, 미래에 대한 불안, 그리고 죽음을 자각하는 능력까지 모두 시간과 밀접하게 얽혀 있습니다. 우리는 그 시간의 흐름 안에서 스스로를 이해하고, 살아갑니다.
하지만 매일같이 스마트워치를 차고 있으면, 시간이 그저 ‘측정 가능한 숫자’로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몇 시간 자고, 몇 걸음 걷고, 칼로리를 얼마나 소모했는지 이 모든 것이 시간이 아닌 ‘데이터’로 다가옵니다. 시간은 체험이 아니라 기록이 되어 버립니다.
기록된 삶과 살아낸 삶 사이
한 번쯤 이런 경험 있으셨을지도 모릅니다. 기분 좋게 일어났는데, 수면 점수를 확인하니 낮게 나옵니다. 그 순간, 몸은 멀쩡한데 ‘피곤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그럴 때마다 스스로에게 묻게 됩니다. 지금 내가 느끼는 감정은 내 것인가, 아니면 기계가 만든 감각인가?
하이데거는 인간이 자신의 선택을 잊고 외부의 흐름에 따라 사는 상태를 ‘비본래적인 존재’라고 불렀습니다. 스마트워치가 내 하루의 질을 정해준다면, 나는 정말로 나 자신의 삶을 살고 있는 걸까요?
기술은 편리하지만, 조심스러워야 할 것도 있습니다.
기술이 반드시 나쁜 것은 아닙니다. 저 역시 스마트워치를 좋아합니다. 더 자주 움직이게 해주고, 휴식이 필요할 때 알려주며, 건강을 챙기는 데에도 도움을 줍니다. 하지만 계속해서 데이터를 확인하고, 목표를 쫓는 생활을 반복하다 보면 어느 순간, ‘살고 있는 것’보다 ‘기록하고 있는 것’에 집중하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 우리는 점점 인간이 아닌 데이터셋처럼 행동하게 됩니다. 최적화되고, 효율적이지만, 피곤한 존재로요.
하이데거라면 말했을 것입니다. 우리가 너무 빠르게 흘러가고 있다고, 본질적인 것과 점점 멀어지고 있다고 말이지요.
그래서 어떻게 해야 할까요?
어쩌면 정답은 ‘균형’일지도 모릅니다. 저도 가끔은 알림을 꺼두고, 걸음을 따로 측정하지 않고, 수면 데이터를 확인하지 않은 채 하루를 보내보곤 합니다. 그런 날은 왠지 조금 더 ‘나답게’ 느껴집니다. 덜 최적화되었지만, 더 생생합니다.
하이데거는 인간이 자신의 죽음을 자각할 때 비로소 진정한 삶을 시작한다고 보았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스마트워치는 심박수와 피로도, 생체 데이터를 통해 우리의 유한성을 계속 상기시켜 줍니다. 그 순간을 더 깊이 있게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줄 수도 있는 것이지요.
하지만 결국 중요한 것은, 그 기기를 어떻게 사용하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내가 선택하고 의식하며 사용하는가, 아니면 그 흐름에 따라 흘러가고 있는가.
질문과 성찰
Q. 스마트워치는 해로운가요?
그렇지 않습니다. 도구일 뿐입니다. 하지만 모든 도구는 사용하는 방식에 따라 우리의 삶을 바꿔 놓을 수 있습니다.
Q. 데이터를 통해 나를 더 잘 이해할 수 있지 않나요?
물론입니다. 다만, 그 데이터가 나의 감각을 대신하게 되는 순간부터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Q. 어떻게 하면 ‘본래적인 삶’을 살 수 있을까요?
스스로에게 계속해서 묻는 것입니다. 지금 이 행동은 나의 의지에서 비롯된 것인가? 아니면 누군가 혹은 어떤 시스템이 정해준 것인가?
Q. 기술을 즐기는 것도 괜찮을까요?
물론입니다. 기술을 사용하는 것 자체는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다만, 사용하면서 ‘나는 왜 이걸 하고 있지?’라는 질문을 잊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Q. 하이데거는 스마트워치에 대해 뭐라고 했을까요?
아마도 직접적인 언급은 하지 않았겠지만, 그 기기가 나의 감각과 행동을 어떻게 바꾸는지, 그것이 나의 ‘존재’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질문해보라고 했을 것입니다.
맺으며
철학은 때로는 먼 이야기에 불과하게 느껴집니다. 하지만 진짜 철학은 책에서가 아니라, 일상 속에서 울리는 손목의 진동 속에서 찾아오기도 합니다.
"지금 이 순간, 나는 정말로 살아가고 있는가?"
그 질문을 잠시 떠올리는 것, 그것이야말로 하이데거가 말한 ‘존재의 시간’을 사는 시작일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