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우연히 대학 강의에서 배웠던 쇼펜하우어 철학을 다시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그가 말한 '의지'라는 개념, 우리가 하는 모든 행동의 배후에 있는 비이성적이고 보이지 않는 힘은 그 당시엔 너무 추상적으로 느껴졌습니다. 그런데 최근 넷플릭스를 아무 생각 없이 스크롤하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혹시 쇼펜하우어의 그 '의지'와 지금 우리가 겪는 추천 알고리즘의 영향력이 비슷한 게 아닐까?
정말 우리가 선택하는 걸까, 아니면 반응하는 걸까?
쇼펜하우어는 우리가 스스로 결정한다고 믿는 건 착각에 가깝다고 봤습니다. 우리의 의식은 단지 표면일 뿐이고, 그 아래에는 더 본능적인 ‘의지’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성이나 논리가 아니라 욕망과 충동이 인간 행동의 진짜 동력이라는 것이 그의 핵심 주장입니다.
이제 이 사상을 현대 플랫폼에 대입해 봅니다. 추천 시스템은 우리가 클릭한 것, 좋아요를 누른 것, 오래 머문 콘텐츠 등을 분석해 다음 행동을 예측합니다. 이게 억압처럼 느껴지진 않죠. 오히려 편리합니다. 그런데, 정말 우리가 선택하는 걸까요? 아니면 이미 유도된 대로 반응하고 있는 걸까요?
알고리즘과 선택의 착각
제가 자주 겪는 일이 있습니다. 넷플릭스를 켜고 뭘 볼지 고민하다가, 결국 첫 화면에 뜬 콘텐츠를 그냥 재생해 버리는 경우죠. 이것이 진짜 선택일까요? 그럴 수도 있지만, 어쩌면 이미 그 방향으로 흐름이 짜여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추천 시스템에 익숙해질수록 우리는 점점 더 과거의 선택에 기반한 콘텐츠만 보게 됩니다. 우리의 '취향'이라는 것이 사실 알고리즘에 의해 길들여지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이건 어쩌면 쇼펜하우어가 말한 ‘자유의지의 환상’과도 닮아 있습니다.
디지털 시대의 보이지 않는 힘
쇼펜하우어는 19세기 사람입니다. 그는 ‘의지’를 형이상학적인 개념으로 설명했죠. 요즘 시대에 형이상학이라 하면 ‘데이터’와 ‘알고리즘’이 어울릴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볼 수 없지만, 그것은 분명히 우리의 행동과 관심, 심지어 욕망까지도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더 무서운 건, 우리가 스스로 정보를 골라 소비한다고 믿고 있다는 점입니다. 실제로는, 그 순간조차도 시스템이 제시한 결과에 반응하고 있는 것일 수 있습니다.
거기서 벗어날 방법은 없을까?
쇼펜하우어는 비관적인 철학자였지만, 그는 예술이나 철학, 혹은 연민과 같은 순간들이 의지의 지배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창구라고 보았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시대에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제가 개인적으로 시도해 본 방법은 추천에만 의존하지 않고, 직접 검색하거나 RSS 피드로 다양한 창작자를 찾아보는 것이었습니다. 완벽하진 않지만, 나만의 콘텐츠 소비 주도권을 조금씩 되찾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Q&A: 의지 vs. 알고리즘
Q. 19세기 철학을 현대 기술과 비교하는 건 너무 비약적인가요?
그럴 수도 있죠. 하지만 행동의 메커니즘만 놓고 보면 꽤 닮은 구석이 있습니다. 둘 다 우리가 모르게 행동을 유도한다는 점에서요.
Q. 우리는 자유의지를 잃고 있나요?
완전히는 아닙니다. 하지만 무심코 넘기다 보면, 우리가 잃고 있다는 사실조차 잊게 됩니다.
Q. 어떻게 저항할 수 있을까요?
호기심을 가지세요. 당신의 ‘버블’ 바깥 콘텐츠를 찾아보세요. 왜 이 콘텐츠가 내 피드에 떴는지 한 번쯤 생각해보는 것부터 시작입니다.
Q. 쇼펜하우어가 SNS를 본다면 무슨 말을 했을까요?
아마도 “이건 인간의 욕망을 증폭시켜 고통을 늘리는 구조다”라고 말했을 것 같습니다. 틀린 말도 아니죠.
Q. AI가 인간의 의지를 이해할 수 있을까요?
아닙니다. AI는 패턴은 흉내 낼 수 있어도, 인간이 ‘원한다’, ‘아프다’, ‘갈망한다’는 감정 자체는 이해하지 못합니다.
맺음말
쇼펜하우어의 철학을 다시 읽으며, 저는 디지털 기술을 새롭게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물론 그는 알고리즘을 상상조차 못했겠지만, ‘보이지 않는 힘이 우리를 지배한다’는 그의 사상은 지금의 추천 시스템과 너무나도 닮아 있습니다.
어쩌면 지금 우리에게 가장 인간다운 행동은, 바로 그 추천 버튼이 눌리기 전에 잠깐 멈추고 생각하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